'지리산 천왕봉...'
어느새 동지도 지나 낼모레면 크리스마스니 올해도 다 지나간 모양이다.
한 해를 돌아보니 두 번의 수술 등 다사다난했지만 나름 선방한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건강상의 이유도 있지만 한해에 서너 번은 걸음 했던 지리산 천왕봉을 올해는 찾지 못한 점이다.
많이 회복되었다지만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이라 선뜻 나서지 못했는데 마침 크리스마스가 주말을 낀 3일 연휴라,
가족과 정겹게 보내야 하는 세밑 황금연휴지만 염치불고하고 찬붕성에게 동행을 청하여 지리에 들기로 한다.
백무동-코바위-제석봉-천왕봉-천왕봉 북사면-마폭포-대륙폭포-칠선폭포-창암 사거리-백무동 원점회귀 산행/ 14.6km
(오룩스 웹을 가동하지 않아 오늘 동행한 찬붕성과 2013년 7월에 역으로 걸음 한 칠선-천왕봉 궤적을 참고 삼아 올린다)
하동바위...(07:30)
오랜만에 마빡에 불 밝히고 부지런히 걸음을 채촉하여 하동바위에 이르니 서서히 어둠이 가신다.
세밑 한파경보가 내려졌지만 생각 밖으로 매섭지 않아 겉옷을 벗고 진행을 하였다.
코로나 때문인지 포주박을 치워버린 참샘은 아직까지는 추위를 견딜만한지 물줄기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소지봉으로 불리는 망바위에 이르러 매서운 바람과 함께 추위가 엄습하여 겉옷을 입기로...
소지봉 이후 제법 고도를 높였는지 상고대와 눈꽃이 등로 좌우로 펼쳐져 올 들어 처음 갖는 겨울산행을 반겨준다.
오늘은 일단 천왕봉을 목표로 하고 하산길은 상항 봐가면서 산길을 잡기로 하였는데
제석봉으로 직등하는 샛길에 이르니 눈꽃이 떡밥 수준이라 바로 제석봉으로 치기로 한다.
날씨도 흐리고 작년과 같이 눈이 귀하여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눈꽃세상에 절로 웃음꽃이 핀다.
코바위...(09:40)
"어이 파워, 여기서 커피 한잔 하고 가세나..."
올해 들어 실질적인 첫 겨울산행이라 장갑 벗기도 귀찮아 간식타임 없이 쉼 없이 진행하였더니 허기가 진다.
천왕봉까지 한 번에 치기에는 무리가 있어 하산 길도 의논할 겸 코바위에서 커피 한잔 하고 가기로 한다.
커피 한잔 후 길을 잡다 매서운 바람결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거센 바람이 불어오며 일순간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구상나무와 철쭉 군락지...
비록 시계가 탁하여 장쾌한 주능 조망은 없지만 화려한 설경에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Bravo my life...!
한줄기 바람에 일순간 열리는 파란 하늘... 아름답게 펼쳐지는 순백의 하얀 설경..
오늘 오기 잘했다는 생각에, 멀리서 따님과 손주들이 옴에도 선뜻 동행하여 주신 찬붕성에 감사의 깊은 념이 절로 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함께 하는 찬붕성 항상 감사합니다...
올 해도 수고 많으셨고 내년에도 서로 건강관리 잘하여 변함없이 함산 즐산 하시게요.~~
10여 분 설경을 감상하다 다시 운무가 몰려와 제석봉을 뒤로하고 정상 방향으로 걸음을 이어간다.
제석봉 전망대 근처 주능선에 붙고...(10:20)
휴일임에도 코로나 영향인지 아님 세밑 한파경보 때문인지 생각 밖으로 사람이 없어 쓸쓸하기까지 하다.
통천문으로...
통천문...(10:55)
지금까지 본 통천문 중에 오늘이 가장 아름답지 않나 싶다.
아름다운 설경에 발길이 잡혀 코바위에서 여기까지 30 분이면 되는데 1시간 20분이나 걸렸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는 지리산 천왕봉...(11:10)
지금 웃는 게 웃는 게 아녀~~♬
한참을 운무에 잠겨있다 강풍이 불어와 일순간 시야가 트여 인증샷을 다시 담는데 대신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는....
에고, 추워라....!
아, 빨리 좀 담으소 추워 죽겠네...바람이 매섭게 불다 보니 잠시 정상석을 독차지 한다.
점심은 바람이 너무 부는 천왕봉 대신 칠선계곡에 든 후 적당한 곳에서 차리기로...
근데, 이 게 뭐다냐...? 한마디로 무흔답설(無痕踏雪)이 아닌 무흔딥(deep)설이다.
초입에 설치된 카메라를 피해 우회한 순간부터 눈이 허리춤까지 올라와 식겁하였지만,
에이, 설마 하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철계단에 이르렇는데도 사람 다닌 흔적이 없어 당혹스러웠다.
살다 보면 겁도 없어진다고....
연례행사로 해마다 겨울에 칠선계곡을 찾는 찬붕성도 그동안 올림만 했지 내림은 처음이라고 주저하시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겨울 칠선계곡을 경험해 보겠냐는 생각에 그냥 내려서기로 한다.
아예 온천지를 눈이 덮듯 심설이면 걸음을 내딛기가 쉬운데 어중간한 눈 깊이라 오히려 힘이 든다.
일일이 바위틈을 스틱으로 탐색하며 걸음을 내딛지만 구별이 용이하지 않아 바위틈에 무릎까지 빠지기 일쑤고
턱이 없는 경사진 바위 사면은 아예 미끄럼 타듯 밀려서 내려오다 보니 어느 순간 스패츠 끈이 끊어졌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눈 덮인 산야를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네가 걷는 그 길은 뒷사람에게 이정표가 된다’는
김구 선생님이 인용하던 ‘답설무흔가’가 아니더라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후답자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점심은 마폭포에서 들기로 하고 내려서는데 러셀도 힘이 들지만 안전에 신경을 쓰다 보니 평소보다 배는 힘이 든다.
다행스럽게 쉬어가라고 2013년에 걸음하고 오랜만에 왔더니 못 보던 목책 계단이 있는 곳에서 조망이 터진다.
제석봉 사태 지역 바로 위...
촛대봉...
다행스럽게 주목 군락지에 들어서니 눈 적설량이 현저히 줄어 길 찾기가 수월해진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나무가 많이 쓰러져 있어 가슴이 아프다.
마폭포...(13:05)
11 시 30 분에 천왕봉 북사면에 들어섰으니 겨우 1.6km 거리을 장장 1시간 30여 분이나 걸려 내려왔다.
서둘러 점심상을 차리는데 워낙 허기져 복잡한 찌게 대신 간단히 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 게눈 감추듯 해치운다.
삼층 폭포부터 얼지 않은 계곡수에 거짓말처럼 눈 쌓인 풍경도 사라지고 앙상한 나뭇가지 겨울 풍경을 보여준다.
제 그랬냐는 듯이 거짓말처럼 풍경이 사라지고 앙상한 나무들만
대륙폭포...(15:30)
평소 같으면 여기서 2시간이면 칠선폭포와 창암 사거리를 거쳐 백무동에 도착하기에 별 걱정을 하지 않는데 힘이
넘쳐나는 산행 시작 시와 지친 하산 시는 개념 자체가 다르기에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인증샷 한장 담고 바로 출발한다.
대륙폭포에서 5분여 거리인 칠선폭포....
자주 찾은 칠선폭포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지쳐서 인증샷 담기가 귀찮아 바로 창암 사거리로 길을 잡게 되더라....
어둠이 내려앉는 다샘 펜션 앞으로 내려서며 오랜만에 힘들게 진행한 하루의 여정을 마감한다....(17:30)
다행히 마빡에 불 안 밝히고 내려왔다고 자축하며, 예전에는 어떻게 이런 산길을 박 짐을 매고 다녔는지 모르겠다며...
지나간 세월과 젊음을 아쉬워하며 건강 잘 챙겨 오래도록 산행을 함께 하자고 위로 아닌 격려를 서로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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