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이 한창이던 4월 중순 산청 오봉마을에서 싸립재로 올라 새봉, 왕등재 습지를 경유하는 산행을 하였다.
10여 년 전에 걸음 했던 곳이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찾았는데 무성해진 산죽밭을 헤쳐가는라 한마디로 죽다 살아났다.
새봉에서 중봉 좌우 동부능선 조망 외에 별 볼거리가 없는 산지라 옛 추억이나 반추해 볼까 나섰다가 산죽과 한판 전쟁을 치루고 왔다.
오봉마을-독가-산죽밭-싸립재-곰샘-새봉-새재-외고개-왕등재습지-계곡길 빨치-임도-오봉마을 원점회귀산행 / 10.44km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오봉리 오봉마을...
지리산에서도 대표적인 오지마을로 심산유곡 산간벽지에 자리한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는데 근래에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되어 펜션촌이 되어가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는 설과 다섯 개의 산줄기가 마을로 뻗어 내린다고 하는 설이 있는데 실제 걸음하여 보니 산줄기 설이 맞는 것 같았다.
산길은 최근에 지어진 '하늘아래 첫 집' 방향으로 길을 잡아가면 된다.
공사가 한창인 '하늘아래첫집' 펜션을 지나면 곧이어 기도터가 나오고 좌틀 하여 계곡을 건넌다.
너무 변하여 낯설기까지 한 마을을 지나 임도 끝단에 이르니 계곡 초입부에 인가가 들어서고 좌측으로 우회 등산로를 개설하여 놓았다.
눈에 익은 계곡을 건너며 본격적으로 산길에 들어서니 곧바로 산죽밭이 시작된다.
독가 근처에 묘역이 있는 듯 누군가 산죽을 베어 편하게 걸음 하였지만 이후부터는 길 흔적이 거의 없어져 감각에 의존하여 걸음해야 했다.
잡목이 우거져 옛길의 부드러움은 사라졌지만 청아한 물소리 들려오는 계곡을 좌측에 두고 연초록 새순이 올라오는 숲길을 걷는 맛은 더없이 좋았는데...
즐거운 감정은 여기 까지고...오봉리에서 싸립재까지 오름하는 산길은 거의 정글이 다 되어 있었다. 사람 몸이 지나다니지 못 할 정도로 산죽이 밀림처럼 우거져 있었다.
이제는 독가가 아닌 페가로 불러야 할 정도로 변한 독가를 지나면서 잠시 소소한 너덜겅이 어어지다 본격적으로 산죽밭이 시작된다.
허걱, 그런데 이 게 다 뭐다냐...?
예전에도 산죽밭은 있었지만 허리춤 정도라 헤쳐갈 만하였는데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커버린데다 밀집도 마저 아주 빽빽하여 아예 터널을 이루고 있다.
멧돼지 이동통로 마냥 터널을 이룬 산죽밭을 나름 꾀를 내어 오리걸음 걷듯 몸을 낮워 진행해 보지만 그것도 잠시 억센 산죽에 싸다구를 무수히 맞는다.
계곡에서 한번 쉼을 가졋기에 싸립재까지 단숨에 붙을 요량이었는데 산죽밭을 헤쳐가느라 진이 빠져 시야가 터지는 지저분한 멧돼지 목간통 근처에서라도 잠시 숨을 돌린다.
숨은그림 찾기..?
사력(死力) 을 다한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하며 산죽밭을 겨우 빠져나와 너덜겅을 잠시 헤쳐가면 급경사 사면에 이른다.
현호색이 지천인 싸립재....
싸리재라고도 불리는 싸립재는 오봉리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를 잇는 고개로 함양과 산청의 군계능선이다.
상내봉과 새봉 사이 안부 싸립재가 함양독바위와 산청독바위를 잇는 산길 중심이라 제법 이름 값이 있건만 요즘은 찾는 이가 없는지 산길이 많이 묵었다,
곰샘...
많은 양은 아니지만 생생한 샘의 물줄기는 두 곳인데 뒤쪽 바위 앞에 검은 파이프로 물줄기를 내었다.
지리산 봉우리들이 다 그렇듯 비록 지리 언저리 봉우리 일 망정 새봉 또한 정상은 큰 바위덩어리들이 옹립하고 있는 암봉이라 오름길이 까질 하다.
상내봉과 군계능선...
얼레지가 지천인 새봉...
11시도 안 되어 점심상을 차리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워낙 산죽밭에서 진을 빼 너럭바위에서 점심을 든다는 핑계로 한참을 쉬어간다.
흐린 날씨라 시야는 탁하지만 조개골을 비롯한 중봉 좌우로 늘어선 지리산 동부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왕산과 필봉산...
새봉 자체가 암봉이라 주의를 요하는 까칠한 바위구간이 두 군데 있다.
또 다른 조망처에서 지리산 주변을 살펴보니 새순이 아직 칠부능선 정도만 올라왔다.
왕산과 필봉 뒤 실루엣은 철쭉이 한창인 황매산이다.
웅석봉과 달뜨기능선...
정면 맨 뒤 봉우리가 가야할 왕등재 습지인데 산죽밭에서 기운을 다 빼서 그런지 오늘 따라 유난히 멀게 느껴진다.
다시 한번 까칠한 바위 구간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며 나이가 먹어감을 실감하며 그 때도 이리 험했나 싶다.
이어진 조망처에서...
윗새재마을...
산행을 시작한 오봉리 오봉마을....
같은 산간 오지인 윗새재마을과 달리 오봉마을은 마을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서 크고 작은 여러 산줄기 능선이 뻗어 내리는 형태을 하고 있다.
왕등재 습지...
10년 전에도 새재 직전 산죽은 이미 사람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우거져서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예 밀림을 형성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산길을 막고 있다.
새재...
윗새재와 오봉리를 넘나드는 옛길 고갯마루다.
새재에서 외고개까지 완만한 산등성이 두 개를 넘어가는 중간에 산길 우측 평범한 고스락에 삼각점이 보여 들어가보니 웅석지맥 969.5m 봉이란 표지기가 달려있다.
외고개...
오봉리 오봉마을과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외곡마을 잇는 고개다. 여기서 내려설까 하다가 이왕 온김에 경사급한 사면을 오름해야 하지만 왕등재 습지를 다녀오기로 한다.
왕등재 습지...
설명판에 의하면 해발 974m에 형성된 습지로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고산습지란다.
왕등재 습지 근처 봉우리에서 계곡길로 내려서기 전 바라보니 천왕봉 중봉 모습과 새봉의 형상의 형상이 비슷하다.
예전과 같이 왕등재 습지에서 계곡으로 바로 치고 내려오는데 이곳 또한 판이하게 식생이 변해 버렸다.
정해진 산길이 없기에 대충 감으로 산죽밭과 계곡을 넘나들며 내려와야 하지만 무성해진 산죽과 잡목에 그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힘들게 내려섰다.
옛 삶의 흔적부터 능선을 따라 막바지 산죽을 헤쳐나와 지계곡에 떨어지니 못보던 사방댐이 새로 들어섰다. 이후부터는 임도 따라 편하게 오봉마을로...
수철마을로 이어지는 고동재 삼거리...
그저 옛 추억이나 반추해 보자며 나선 걸음에 달라진 식생에 식겁한 하루를 보냈다. 그건 아마도 전쟁같은 산죽...♬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10년전 걸음한 산행기를 찾아보니 제목이 "지리산 새봉,걷는 맛 즐기려 지리 정원으로..." 라, 세월의 무상함과 더불어 자연의 위대함... 등등 여러 생각들이 들었는데 한편으론 비탐길 출임금지를 시행하는 국립공원공단의 승리 성과물로 널리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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