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지 조망처에서..'
찬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 해가 저무는 연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룬 것 없이 또 한해를 보낸다는 아쉬움이 찾아든다.
해마다 이맘 때면 산정에서 하룻밤 노숙을 하며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데,
나이를 묵다보니 막연한 불안감이 더해져 올해는 만복대에서 송년비박을 하고 싶어진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어수선한 마음도 정리하고 가다듬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다.
만복대골...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건만 역시나 지리에도 눈이 없다.
개인적으로 지리에서 제일 만만한 만복대골...
언제 와도 동네 뒷산 같은 분위기와 산길...이 포근함이 좋다.
올해는 아마 성묘객이겠지만 누군가 산죽까지 베어놔 한결 수월하다.
묘봉암터에 이르자 겨우살이가 지천이다.
해마다 지리에서 겨우살이 채취를 하던 후배도 떨어진 체력에 지리를 멀리하게 되어
이제는 사서 먹는다는 애기를 나누며 지리산꾼의 맥이 점점 끊겨간다는 애기를 나눈다.
조망 좋은 묘역 이후 등로는 계곡을 벗어나 싸리나무가 무성한 능선으로 이어진다.
산방이라 인적하나 없는 만복대...
빽빽한 싸리나무 군락를 벗어나 억새평원에 서니 만복대가 바로 눈앞이다.
반야봉은 만복대에서 바라볼 때 제일 웅장한 거 같다.
오늘 노숙지가 탁트인 조망에 태풍이 몰아쳐도 끄덕없을 천하명당인데
쿠션이 느껴질 정도로 푹신하게 바닥공사까지 하니 특급호텔 저리가라 한다.
사이트를 구축한 후 키핑해 두었던 酒님을 찾아보니...
엥, 손을 탔다...! 지난번 동행한 일행중 누군가 다녀간 모양이다.
오늘 만큼은 구라청이면 좋을 텐데...
일기예보대로 시간이 갈수록 시야가 탁해져 오늘 일몰은 없을 거 같다.
노고단 종석대 작은 고리봉...
여기서 보니 투구봉능선과 도계능선 사이 봉산골이
오후시간 임에도 짙은 음영에 잠겨 얼음골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조망이라도 좋으면 산이름이라도 부르려만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우리 둘 다 酒님을 열렬히 숭배하는 스타일도아니고...심심하여 셀카놀이라도...^^
어허,허리를 펴셔야죠...
Ok~~good...!
에헤, 요즘 누가 그런 걸 한데요...?
진부하게스리...
그렇죠,김 정은도 한다는 하트 정도는 날려줘야죠~~^^
조금 앞으로....
빙고, 좋아요..
예상대로 잔뜩 찌뿌린 날씨로 일몰은 꽝~~
산정에 밤은 빨리 찾아오는 법이라 다섯 시가 넘으니 한밤중이다.
찬붕성이나 나나 술보다는 안주빨이 더 좋은 쪽이라 한잔두잔 기울이며
이전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배가 불러온다.
가져온 술은 태반이 남았는데...
내일 멋진 일출을 기대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기 전 휴대폰을 열어보니
어릴적 친구모임 단톡방에 친구 모친상 조문으로 여러 글이 올라와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위로 문자와,친구들에게 여행을 왔으니 내일 도착하는대로
문상을 같이 가자는 간단한 톡을 남긴다.
여행...!
그래 나에게는 비박이 여행이다.
나에게 비박은 산행이라기 보다 낯선 곳에서 하룻밤 보내는 여행에 가깝다.
여행은 항상 그러하듯이 여행 자체보다 떠나는 마음 그리고 준비하는 과정 그 자체가 즐겁다.
무거운 등짐에 허리가 휘어도 먹거리를 줄이지 못함도
내입 보다는 동행인의 입 때문이 아니던가?
동행(同行)...
일정한
진정한 동행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 추운 한겨울에 산에서 같이 밤을 보내는 동행이 있음이 행복하다.
올해도 형님 덕에 행복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익일 아침..
일몰과 달리 다행히 일출은 볼 것 같다.
아무래도 박지 앞 조망처는 일출을 보기엔 너무 고도가 낮다는 생각에 만복대로 가기로...
일출...
만복대 못미쳐 암봉에 서니 삼도봉 위로 붉은 해가 솟구친다.
오늘따라 유난히 강렬한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날마다 뜨고 지는 해가 뭐가 다를까마는 희망적인 뭔가가 필요한 시기에 맞는 일출이라 더 장엄해 보인다.
내고장 전주쪽은 구름에 덮혔고...
왼쪽 중앙 만행산 뒤로 중앙 덕태 선각산군 그 뒤로 운장산과 곰직이봉 복두봉...
서북능선 뒤로 장안 백운 대봉산 라인 그 뒤로 남덕유 향적봉...
조계산과 모후산 무등산이 운무 위에 떠있는 한점 섬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산군은 걸음한 산이 미천하여 패스...
기도..^^
연말이라 감정이 예민해져 그런지...
나이 묵어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시기라 그런지...
차디찬 만복대 정상석을 끌어안고 뭔지 모를 소망을 가득 빌어본다.
찬붕성도...
걱정마,다 잘 될 거야~~!
햇볕이 좋아 금새 뽀송뽀송 마른 텐트를 걷고 간단히 아침을 든 후 커피 한잔...
그 맑던 시계가 어느새 미세먼지로 탁해져 바로 하산하기로...
무등산...광주분이라...^^
비록 눈은 없어도 이 장엄한 풍광에 만복대를 자주 찾게 되는 모양이다.
게으름이 주 원인이지만 산행기가 늦는 나름의 핑계를 아래 글로 대신합니다.
산에 가기 전 눈을 떠 지도를 펴보고,
산에 다녀와서는 눈을 감고 기억의 지도를 떠올린다.
산행기는 마치 바둑을 복기하듯이 기억의 지도를 따라간다.
눈을 감고 다시 오르는 산. 그 속에 켜켜이 박혀 있는 것을 꺼내 다시 밝힌다.
그 속에는 황홀했던 기억이 있으며,
어려웠던 순간의 아찔함이 배어 있고,
계획했던 일정을 마무리한 희열이 박혀 있다.
안치운의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 중에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도는 일출을 맞은 만복대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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