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창이 다리..'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전날 가족과 함께 차박 온 후배 위문차 선유도에 갔다가 덩달아 하룻밤 묵고 왔다.
담날 비 예보도 있고 꿀렁꿀렁하여 그냥 귀가하기로 하는데 너른 국도 대신 최대한 좁은 지방도를 타고 가기로 한다.
가다가 문득 며칠 전 늘산성이 쟌차로 다녀간 군산 CC 주변 만경만 자전거길이 생각나 옥구면 쪽으로 귀가 길을 잡았다.
새창이 다리 군산 쪽 전망대...
네비 주소는 전북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 304-9
새창이라는 말은 '새로 지은 창고'로 일제때 이곳에 김제평야의 쌀을 모아 임피를 거쳐 군산항으로 보냈다고 한다.
즉, 일제의 잔인한 수탈의 생생한 기록이자 증거로 뼈져리게 반성하고 사무치게 기억해야할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대야가 고향인 아내가 근처에 친구 집이 있어 어릴 때 자주 놀러 왔던 추억의 장소다.
한창 바쁜 농번기에도 장인어른이 이 곳에서 망둥어 삼매경에 빠져 장모님 애를 종종 태우셨다고...
그나저나 늘산성 오지랖도 넓지 광주사람이 이 시골 동네 자전거길을 어찌 알고 여기까지 행차를 하셨는지...
새창이 다리 포구 이름은 원래 신창진(新倉津)으로 동국여지승람에 만경강의 하류는 신창진, 상류는 안천(고산천)과 남천
(삼천천과 전주천)으로 나와 있는데, 현재 완전하지는 않지만 만경강 천변 따라 전주에서 자전거길이 쭉 연결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부터 1933년까지 5년 동안 시멘트로 28 만환을 들여 만든 새창이 다리는 김제 평야의 쌀을
군산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운송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다리로 , 한국전쟁 때 폭격을 당했지만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그 역사성이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시멘트 다리는 1922년 준공된 전주
남부시장에 있는 싸전다리지만 아쉽게도 6.25 때 포격을 당해 새창이 다리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멘트 다리다.
일본 제국주의 수탈의 산물, 애환의 근대문화유산 새창이 다리 위에 2014년 김제시에서 추억, 낭만이 깃든 시와 그림
사진을 전시하고 아름다운 화분과 벤치, 오색 찬란한 가로등을 설치하여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멘트 다리답게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흔적이 보인다.
착취와 고난의 역사 그 아픈 시간의 흐름을 묵묵히 견뎌낸 흔적인 듯 묵직했던 다리가 이제는 퇴락하고 초라해졌다.
이런 근대문화유산을 그저 낡았다고 안전상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니 단세포적인 발상에 그저 웃음만 나온다.
수탈의 아픔과 치욕의 역사를 잊고 싶은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그 아픈 고난을 참고 견디며 버터낸 우리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없앤다는 건 제 2의 수탈이며,일제의 잔인한 수탈의 증거를 인멸하는 친일매국행위와 다름 없다고 본다.
만경 8경 중 2 경인 신창지정(新創之情)...
새창이 포구를 한자로 표현하면 신창진(新創津) 즉 신창 새창이 나루터를 뜻한다.
포구라는 말만 들어도 서민의 애환이 떠오르듯 경치 경(景) 자를 쓰지 않고 뜻 정(情) 자를 쓴 이유를 알겠다.
새창이 나루는 이 곳을 오고 가던 사람들과 문물이 남기고 간 역사와 문화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란 의미다.
만경 8경 중 제1경 만경낙조((萬頃落潮)...
만경강의 아름다운 노을을 조망할 수 있는 만경읍 화포리에 있는 공원형 휴식처다.
만개의 이랑을 적실 수 있다고 해서 만경강, 구불구불 뱀처럼 주변 농토를 감싸듯이 흐른다 해서 사행천...
주변에 변변한 카페나 식당 등 위락시설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자연 그대로 원시미를 간직한 강이기에 더 맘에 든다.
언제 청명한 가을날 짬을 내어 낙조도 보고 두둥실 보름달 아래서 바람에 실려오는 풋풋한 갯내음을 즐겨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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